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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ck

Styx: 프로그레시브 록의 전설적 밴드

by 로큰롤 2024. 12. 21.

목차

    Styx는 1970년대와 1980년대를 주름잡은 미국의 대표적인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입니다. 1972년 일리노이주 시카고에서 결성된 이 밴드는 하드 록, 아트 록, 소프트 록 등 다양한 장르를 아우르는 실험적 사운드로 유명합니다. 그들의 음악은 시간이 지나도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현재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Styx의 탄생과 초기 활동

    Styx의 시작은 1960년대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드럼과 베이스를 담당하는 파노조(John Panozzo, Chuck Panozzo) 형제와 리드보컬과 피아노를 맡은 데니스 드영(Dennis DeYoung)이 의기투합하여 밴드를 결성했습니다. 1970년, 대학 동기인 기타리스트 제임스 "JY" 영(James 'JY' Young)과 존 크루엘스키(John Curulewski)가 합류하면서 TW4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밴드 이름 'Styx'는 특별한 의미 없이 선택되었습니다. Wooden Nickel 레코드사와 계약을 체결하면서 밴드 이름을 바꾸라는 요구를 받았고, 데니스가 제안한 여러 이름 중 가장 반대가 적었던 이름이 바로 'Styx'였습니다.

    "우리는 매번 12마디 반복에 지겨워졌고 뭔가 다른 것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밥 딜런, 더 후, 비치 보이스 등이 등장했는데... 우리는 모두 어렴풋하게나마 비슷한 시도들을 하고 있었다..."

     

    1972년, Styx는 셀프 타이틀 앨범 [Styx]로 공식 데뷔했습니다. 첫 싱글 'Best Thing'이 빌보드 Hot 100 차트에 6주 동안 올랐지만, 전체적으로 아트적 경향을 따른 이 앨범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Styx의 음악적 여정의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Styx 오피셜

     

    STYX

    Welcome to the Official YouTube channel of Styx. On Tour 2024. https://styxworld.com/

    www.youtube.com

     

     

    Styx의 전성기와 대표작

    Styx의 진정한 도약은 1975년 A&M 레코드사로 이적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Lorelai'가 차트 27위에 오르며 그들의 잠재력을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밴드의 운명을 바꾼 것은 기타리스트 토미 쇼(Tommy Shaw)의 합류였습니다.

    토미 쇼가 참여한 첫 앨범 [Crystal Ball]의 성공을 시작으로, 1977년 [Grand Illusion] 앨범은 Styx의 첫 골든 레코드를 달성하며 300만 장 이상 판매되는 대히트를 기록했습니다. 이어진 [Pieces of Eight] 역시 연이어 히트하며 Styx는 데니스-JY-토미의 3인 체제로 굳건히 자리잡았습니다.

    1979년 발매된 [Cornerstone]에 수록된 'Babe'는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르며 Styx의 전성기를 이끌었습니다. 1981년의 [Paradise Theatre]는 Styx 음반 중 유일하게 앨범 차트 정상을 차지했으며, 'The Best of Times', 'Too Much Time On My Hands' 등의 히트곡을 배출했습니다.

    "비틀즈가 없이는, 아니면 다른 누군가가 비틀즈의 역할을 하지 않았다면 프로그레시브 록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83년 발표된 [Kilroy Was Here]는 'Mr. Roboto', 'Don't Let It End', 'High Time' 등의 곡으로 빌보드 차트 상위권을 차지하며 Styx의 인기를 다시 한 번 입증했습니다. 특히 'Mr. Roboto'는 일본식 영어 발음이 나온다는 이유로 당시 국내에서 금지곡 처분을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더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Styx의 해체와 재결성

    Styx의 성공 이면에는 멤버들 간의 갈등도 있었습니다. 특히 토미 쇼와 밴드의 핵심 데니스 드영 사이의 갈등은 [Kilroy Was Here] 앨범을 기점으로 폭발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1984년, 라이브 앨범 발표를 마지막으로 데니스와 토미가 각자의 길을 가면서 Styx는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나 솔로 활동의 실패로 1990년 Styx는 다시 재결성되었습니다. 토미 쇼 대신 글렌 버트닉을 새 멤버로 맞이한 Styx는 'Show Me The Way'와 'Love At First Sight'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하지만 1997년 드러머 존 파노조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다시 한 번 위기를 맞게 됩니다.

    1999년, Styx는 다시 한 번 멤버를 재구성하여 [Brave New World]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Styx는 주로 공연 위주의 활동을 펼치며 팬들과 소통해왔습니다. 2017년에는 새 스튜디오 앨범 [The Mission]을 발표하며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 중임을 보여주었습니다.

     

    Styx의 음악적 유산과 현재

    Styx의 음악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복잡한 구조, 실험적인 사운드, 그리고 깊이 있는 가사로 특징지어집니다. Styx는 록 음악에 클래식적 요소를 접목시키는 데 선구자적 역할을 했으며, 이는 후대 많은 밴드들에게 영감을 주었습니다.

    Styx의 음악은 시대를 초월한 인기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들의 대표곡들은 여전히 라디오에서 자주 들을 수 있으며, 새로운 세대의 음악 팬들에게도 사랑받고 있습니다. 특히 'Come Sail Away'는 미국 애니메이션 '사우스 파크'에서 캐릭터 카트먼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로 등장하며 젊은 세대에게도 친숙한 곡이 되었습니다.

     

    "Styx는 1972년에 공개된 처녀작 [Styx]로 공식적인 데뷔를 했다. 첫 싱글 'Best Thing(82위)'을 비롯해 전체적으로 아트적 경향을 따른 앨범이었지만 큰 주목을 끌지는 못했다."

     

    현재 Styx는 여전히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원년 멤버인 제임스 "JY" 영과 척 파노조를 중심으로, 로렌스 고완(키보드, 보컬), 토드 수셔맨(기타), 리키 필립스(드럼)가 함께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투어를 진행하며 팬들과 만나고 있으며, 새로운 음악 작업도 계속하고 있습니다.

    Styx의 음악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를 넘어 하나의 예술 형태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복잡한 구조와 깊이 있는 가사로 인해 여러 번 들을수록 새로운 매력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는 Styx가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입니다.

    Styx는 록 음악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대표주자로서, 음악의 경계를 넓히고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습니다. 앞으로도 Styx의 음악은 계속해서 새로운 세대의 음악 팬들에게 영감을 줄 것이며, 록 음악의 역사에서 그들의 위치는 더욱 공고해질 것입니다.